법원은 민간의 채무 게약을 강제한다. 기업이 채무 상환을 거부하면 법원의 재판을 통해 자산의 강제 매각 절차나 청산 절차를 밟는다. 국가 채무는 어떨까? 전통적으로 국가는 스스로 동의 없이 외국의 법정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주권 면제 원리에 의해 채무의 강제 집행으로부터 보호받았다. 국가의 상업적 거래는 주권 면제가 적용되지 않는 게 현재의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 채무의 이행은 법원에서 강제하기 쉽지 않다.
이튼의 고전적 가설
많은 경제학자는 국가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법적 제재나 구제 절차가 제한적인데도 국가 채무가 상환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논의 출발은 이튼의 고전적 가설이다. 이튼은 GDP가 줄어들 때 채무국이 해외 차입 이외의 방식으로는 이를 대응할 자금을 확보할 수 없고 채무불이행이 신용시장에서의 영구적인 배제를 의미한다면, 신용시장에 다시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위험이 채무 상환의 충분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비판
이튼의 가설은 강한 비판을 받았다. GDP가 줄어들 때 해외 차입이 총수요를 유지하는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가정에 대한 지적이 첫번째다. 불황에 대비하는 다른 수단이 있으면 불확이 닥쳤을 때 총수요 유지를 위한 해외 차입의 필요성은 떨어진다. 이에 따라 신용시장에서 배제하겠다는 위협의 효과도 약해진다. 또 다른 비판은 채무를 불이행하면 신용시장에서 영구적으로 배제된다는 가정에 대한 비판이다. 일단 채무불이행이 일어나면 채권국 입장에서도 영구 배제보다 신용거래 재개가 더 유리하다. 실증 자료도 이튼 가설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지난 30년 간 채무불이행을 경험한 국가는 빠른 시일 내에 국제자본시장에 다시 접근했다. 채무불이행 이후 자본시장 접근이 배제되는 기간은 1980년대에는 평균 4년이었다. 이후에는 2년 이내로 더 줄어들었다.
새로운 가설
이후 연구자들이 새운 가설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첫번째는 채무 상환의 이유를 무역 제재나 자산 동결 같은 채권국의 직접적인 제재에서 찾는다. 둘째는 차입 비용의 상승 같은 신용시장의 반향을 우려해 채무를 상환한다는 논리다. 세번째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채무국의 국내 경제가 입을 피해에 주목했다.
제재 효과 분석
실증작업은 채무불이행 이후 가해진 제재의 효과와 국내 경제적 피해에 대한 계량적 분석으로 간접적으로 이뤄진다. 채권국의 직접적 제재 효과는 무역량 감소 정도를 측정해서 알 수 있다. 실제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국가에서 무역량이 감소한 사례가 여럿 발견된다. 그러나 무역량 감소한 기간은 3~4년 정도로 길지 않다. 따라서 무역 제재 위협이 채무 이행의 이유로 단정하기는 힘들다.
평판 문제
신용 시장에서의 평판
신용 시장에서의 평판 효과는 차입 금리의 높낮이로 알 수 있다. 1997~2004년 자료를 통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채무불이행 이후 1년 동안은 가산 금리가 4% 포인트 올랐지만 2차년도에는 2.5% 포인트로 낮아졌다. 3차년도 이후에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채무불이행 선언 이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가삼 금리가 크지 않고 빠르게 하락한다는 점에서 신용시장 평판 하락이 채무 이행의 이
유라고 보기 어렵다.
국내 경제 피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국내 경제적 피해 여부는 GDP 증가율의 변화로 측정할 수 있다. 채무 불이행은 GDP 증가율을 약 0.6%포인트, 은행 위기를 동반하면 2.2%포인트 감소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채무불이행 발생 1년 후부터는 채무불이행이 GDP 증가율에 미치는 효과가 통계적 유의미성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일시적 GDP 증가율 하락도 영구적인 손실이다. 따라서 채무불이행이 GDP 감소를 초래하는 구체적 경로가 밝혀지면 이 가설의 설득력을 더 커진다.